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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대첩 (1019년), 고려의 자주권을 지킨 역사적 승리



1. 거란의 침공, 위기의 고려

1018년, 거란의 소배압이 이끄는 대규모 군대가 고려를 침략합니다. 거란의 세 번째 침입이었습니다. 약 10만 명의 대군은 고려의 중심부를 노렸고, 고려는 생존의 기로에 놓였습니다.

고려의 강감찬은 냉철한 판단으로 침략의 흐름을 읽고, 침착하게 전열을 정비했습니다. 그는 기습과 방어, 그리고 지형을 활용한 작전으로 전투를 준비했습니다.


2. 결정적 순간: 귀주에서의 맞대결

결정적 전투는 1019년, 지금의 평안북도 구주(귀주)에서 벌어졌습니다. 거란군이 퇴각하던 중, 강감찬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총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강감찬은 강을 건너던 거란군을 노려 선제 타격을 가했습니다. 고려군은 강을 건너는 적군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며 포위망을 좁혔습니다. 이 과정에서 거란군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강물에 빠져 목숨을 잃었고, 소배압은 가까스로 도망쳤습니다.

고려군의 전과는 대단했습니다. 약 10만 명의 적군 중 생환한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3. 강감찬의 리더십, 전략의 완성

강감찬 장군의 리더십은 전투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는 적의 퇴로와 심리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고려의 지형적 이점을 극대화했습니다. 적을 끝까지 추격하지 않는 대신, 결정적 순간에 치명타를 가해 승리를 확정짓는 신중한 전략도 돋보였습니다.

당시 백성들은 그의 승리를 기리며 귀주대첩을 "하늘이 내린 승리"라며 칭송했습니다.


4. 귀주대첩의 역사적 의의

귀주대첩은 단순한 군사적 승리를 넘어 고려의 독립과 자주성을 지켜낸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거란은 이 패배 이후 더 이상 고려를 침공하지 못했고, 동아시아에서 고려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강감찬은 이후 귀주대첩의 공로로 많은 백성들에게 존경받았으며, 지금까지도 고려의 대표적인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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